무엇을 배울지보다 살아남을지 고민하는 현실
대학에서 AI가 불러온 변화는 과제 부정행위에만 머물지 않는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프랭크 브루니에 따르면, 교수들이 AI 시대에 맞춰 강의와 과제를 다시 설계하는 사이 학생들은 AI를 피할 수 있는 전공을 찾고 있다. ‘무엇을 배우고 싶은가’보다 ‘어떤 직업이 AI에도 살아남을까’를 먼저 고민하는 것이다.
고등교육 재단 Lumina Foundation과 여론조사기관 갤럽의 조사에서는 재학생의 약 47%가 AI가 노동시장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전공 변경을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답했다. 이미 전공이나 진로 분야를 바꾼 학생도 16%에 달했다. 학사과정 학생의 42%, 전문학사과정 학생의 56%가 전공을 다시 생각해 본 것으로 나타났다. 흥미와 적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전공 선택에 ‘직업별 AI 생존 가능성’이라는 새로운 변수가 끼어든 셈이다.
미래가 불확실할수록 당장 실용적으로 보이는 전공에 마음이 끌리기 쉽다. 문제는 직업 세계가 전공을 선택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변한다는 점이다. 오늘 유망하거나 안전해 보이는 전공도 졸업할 무렵에는 판단의 근거 자체가 낡아 있을 수 있다.
신입생 9,500여 명을 조사한 고등교육 컨설팅 기관 EAB 자료에서도 이러한 불안이 확인된다. 2025년 입학생의 10%는 AI로 인한 고용 불안 때문에 전공을 바꿨고, 42%는 AI가 자신의 진로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럼에도 EAB가 ‘AI에 안전한 전공’을 찾지 말라고 조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안전해 보이는 선택이 미래에도 안전하리라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브루니는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를 수수께끼에 비유한다. 반면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오랜 세월에 걸쳐 가치를 입증한 인간 이해의 자료로 제시한다. 그의 요지는 분명하다. 현재의 직업 목록을 좇기보다 기술과 유행이 바뀐 뒤에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전공을 선택할 때도 ‘AI를 피할 수 있는가’보다 ‘변화에 적응할 힘을 기를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실업률 7%가 증명한 컴공 불패 신화의 종말
컴퓨터과학은 오랫동안 가장 실용적인 전공으로 꼽혔다. 미국 4년제 대학의 컴퓨터과학 학위 취득자는 2008년부터 2024년까지 약 다섯 배로 늘었다. ‘코딩을 배우면 안정적인 직업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확산된 결과였다.
하지만 최근 흐름이 달라지고 있다. 미국 대학 등록 통계기관 National Student Clearinghouse에 따르면, 4년제 대학의 컴퓨터, 정보과학 등록생은 65만9,700명에서 2025년 가을 60만6,100명으로 8.1% 감소했다. 노동시장 분석가 제이컵 라이트는 전체 전공에서 이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도 약 20년 만에 처음으로 줄었다고 분석했다.
여러 요인이 동시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졸업자 공급은 늘어난 반면 기술기업의 채용은 둔화했고, 생성형 AI가 초급 개발자의 업무를 대신할 수 있다는 인식도 퍼졌다. 다만 현재 자료만으로 감소 원인을 단정하기는 어렵다.
대신 학생들은 공학 계열로 눈을 돌리고 있다. 같은 자료에서 공학 계열 등록생은 7.3% 증가했다. 전기공학은 13.8%, 기계공학은 11.4% 늘었다. 미국 컴퓨팅연구협회(CRA)가 130여 개 기관을 조사한 결과도 비슷했다. 전통적인 컴퓨터과학과 소프트웨어공학 전공자는 감소했지만, 컴퓨터공학, 사이버보안, AI 전공자는 상대적으로 증가했다. AI만 다루는 분야보다 물리적 장치와 연결된 분야가 자동화에 덜 취약할 것이라는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컴퓨터과학의 가치가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어떤 지표를 보느냐에 따라 평가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 지표 | 컴퓨터과학 | 철학 |
|---|---|---|
| 실업률 | 7.0% | 5.1% |
| 불완전취업률 | 19.1% | 47.1% |
뉴욕연방준비은행 자료에서 최근 컴퓨터과학 졸업자의 실업률은 7.0%로, 철학 전공자의 5.1%보다 높았다. 그러나 전공과 무관하거나 학위가 필요 없는 일자리에서 일하는 비율인 불완전취업률은 컴퓨터과학이 19.1%, 철학이 47.1%였다. 초기 임금도 컴퓨터과학 졸업자가 훨씬 높았다.
결국 실업률이나 임금처럼 하나의 수치만 보고 ‘다음으로 안전한 전공’을 고르면 중요한 정보를 놓칠 수 있다. 전공의 전망을 판단하려면 취업 가능성뿐 아니라 일자리의 질, 임금, 기술 변화에 대한 적응력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전공 이름 대신 AI 적용 역량에 집중하라
컴퓨터과학의 인기가 주춤하면서 ‘인문학의 복수’라는 말이 등장했다. 영문학을 전공한 Anthropic 사장 다니엘라 아모데이는 AI가 더 많은 일을 맡을수록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해, 역사적 통찰, 인간을 움직이는 동기를 파악하는 능력이 중요해진다고 말했다. Google Labs의 작가 스티븐 존슨은 이런 흐름을 ‘인문학의 복수’라고 표현했다.
비슷한 주장은 대학뿐 아니라 실리콘밸리에서도 나온다. AI가 과학, 기술 분야의 과제를 대신할수록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는 능력이 더 큰 가치를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문학의 부활을 선언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AI 기업들이 기술의 인간적 효용을 강조하기 위해 내세우는 홍보 논리일 수도 있다. 글로벌 채용, 인사 컨설팅 기업 Korn Ferry의 전문가도 언어와 소통 능력에 대한 수요가 민첩한 소규모 조직에서 먼저 나타났을 뿐, 대기업의 광범위한 채용 변화로 이어졌다는 증거는 아직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더구나 인문학 전공이라고 해서 AI의 영향을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라이트는 미국 대학 1,000여 곳의 강의 설명과 LLM의 과제 수행 능력을 결합해 전공별 AI 노출도를 계산했다. 그 결과 통계, 데이터과학에 이어 영어와 컴퓨터과학의 노출도가 높게 나타났다. 에세이 작성과 분석, 요약처럼 인문학에서 자주 요구되는 작업도 이미 AI가 능숙하게 처리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AI 역량이 컴퓨터과학 전공자에게만 있는 것도 아니다. 대학생 채용 플랫폼 Handshake가 1,240만 명의 프로필을 분석한 결과, AI 경험을 보유한 사람 가운데 약 3분의 2는 컴퓨터과학 전공자가 아니었다. 컴퓨팅, 공학, 수학 전공자까지 모두 포함해도 4분의 1 이상은 비즈니스, 경제, 생물학, 커뮤니케이션, 심리학, 마케팅 등 다른 분야 출신이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전공의 이름이 아니다. AI를 자신의 분야에 어떻게 적용하고, 그 결과를 얼마나 정확하게 해석하고 판단할 수 있는지가 더 직접적인 경쟁력이 되고 있다.
스탠퍼드 상징체계학이 가르치는 융합의 힘
AI가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은 경력의 출발점에서 먼저 드러난다.
스탠퍼드대학교 교수 에릭 브린욜프슨과 연구진이 급여 처리 기업 ADP의 급여 자료를 분석한 결과, 경제 전반에서 일자리가 대규모로 사라진 흔적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AI 노출이 높은 직종에서는 22~25세의 고용이 노출이 낮은 직종의 같은 연령대보다 약 19% 낮은 흐름을 보였다. 전년의 15%보다 격차가 더 벌어진 것이다. 기업들은 기존 직원을 해고하기보다 신규 채용을 줄이는 방식으로 인력을 조정했다.
그래서 전공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초급 채용의 병목을 피하기 어렵다. 브루니가 제시한 전공 선택의 기준도 ‘지금 당장 쓸모 있는 분야’가 아니다. 기술이 달라진 뒤에도 오래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지가 더 중요하다. 인문학도 무조건 안전한 선택은 아니다. 차세대 ChatGPT나 Claude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특정 전공을 ‘AI 시대의 안전지대’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Anthropic의 CEO 다리오 아모데이가 채용에서 강조한 역량 역시 코딩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소통 능력과 정서지능, 호기심, 다른 사람을 도우려는 태도도 중요하게 꼽았다. 이를 영문학과 같은 특정 전공의 승리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전공과 관계없이 인간을 이해하고, 자신의 판단을 다른 사람에게 명확하게 설명하는 훈련이 중요해졌다는 뜻에 가깝다.
일부 대학 과정은 이미 학과의 경계를 넘어 이런 역량을 가르치고 있다.
- 스탠퍼드대학교의 상징체계학은 컴퓨터과학, 심리학, 언어학, 철학을 연결한다.
- 미시간대학교의 로봇공학은 여러 공학 분야를 함께 다루며, 버클리대학교의 데이터과학은 계산 능력을 현실 문제에 대한 탐구와 결합한다.
결국 학위가 특정 직업의 미래를 보장할 수는 없다. 대학에서 길러야 할 것은 변화하는 도구를 이해하고, 그것을 인간의 맥락에 맞게 활용하는 능력이다. 좋은 질문을 만들고, 설득력 있는 서사를 구성하며, 판단과 의사결정을 조율하는 힘이 그 중심에 있다.
출처
- How Should College Students Navigate A.I.? By the Oldest, Truest Stars — The New York Times (Frank Bruni, 2026-08-24)
- College Students Weigh AI’s Impact on Majors and Careers — Gallup (Lumina–Gallup 2026)
- Q&A: How AI is Affecting Students’ Career Decisions — U.S. News (EAB)
- The hottest college major hit a wall — The Washington Post
- How exposed is higher education to Artificial Intelligence? — Jacob Light
- Computer Science Degrees Are Losing Popularity in the AI Era — Built In
- CERP Pulse Survey: 2025 Undergraduate Computing Enrollment — CRA
- The Labor Market for Recent College Graduates — Federal Reserve Bank of New York
- Anthropic cofounder: humanities ‘more important than ever’ — Business Insider
- Revenge of the English majors — Business Insider
- AI Career Skills Move Beyond Computer Science — Inside Higher Ed
- No Widespread Displacement, but the AI Employment Gap for Young Workers Has Widened to 19% — Stanford Digital Economy Lab
- Symbolic Systems Program — Stanfor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