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지 않으면서 더 오래 대화한다는 모순
미국의 한 테크 저널리스트는 챗봇에 애착을 느끼는 사람을 한심하고 위험하게 여겼다. 그런데 부모를 잃은 뒤에는 사람에게 꺼내지 못한 말을 AI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연인과 가족이 곁에 있어도 시간과 감정을 요구하지 않는 AI가 대화 상대가 됐다. AI를 믿지 않는다는 판단과 AI에 모든 것을 말하는 행동이 동시에 나타났다.
그렇다면 이런 이중성은 얼마나 퍼져 있을까. 퓨리서치센터가 2026년 6월 조사한 미국 성인 가운데 49%가 AI 챗봇을 사용했다. 챗봇 사용량이 가장 많은 30세 미만은 AI가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응답 비율도 가장 높았다. MIT 미디어랩과 OpenAI가 981명을 4주간 무작위 배정한 실험에서도 대화 방식과 주제를 가로질러 사용 시간이 길수록 외로움과 정서적 의존이 높고 사람과의 교류는 적었다. 믿지 않으면서도 더 오래 붙들게 된다는 말이다.
값싼 AI 대화가 인간관계를 비싸게 만든다
슬픔을 사람에게 말할 때는 대화가 시작되기 전부터 여러 조건을 헤아리게 된다.

- 지금 연락해도 되는지, 같은 이야기를 다시 해도 괜찮은지, 상대가 이 감정을 감당할 여유가 있는지를 살핀다.
- 가까운 관계일수록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커질 수 있다.
- 위로가 필요해도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런데 AI와 대화할 때는 상대의 피로와 사정을 계산하지 않아도 된다. 시간대를 가리지 않고 응답하며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도 태도가 달라지지 않는다. 이런 편의는 정확성에 대한 신뢰와 별개로 AI를 먼저 찾게 만든다. 실제로 알토대학교의 AI 동반자 연구에서는 조건 없는 지지가 인간관계에 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더 큰 비용으로 느끼게 해 사람들이 먼저 연락하는 횟수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람 사이 대화가 더 비싸게 느껴진다는 말이다.
AI가 리허설인지 대체재인지는 그다음이 말해준다
그렇다면 그 위안은 오래갈까. 알토대학교 연구진은 AI 동반자 앱 레플리카 사용자 약 2천 명의 게시글을 첫 사용 전후 1년씩 비교했다. 초기의 위안 뒤 외로움과 우울을 나타내는 언어 신호가 비교 집단보다 늘었다. 4개국 성인 2,149명을 12개월 동안 추적한 연구에서도 외로움이 챗봇 사용 증가를 예측했고 동반자 목적의 사용 증가는 4개월 뒤 정서적 고립 증가로 이어졌다. 다만 모든 AI 대화가 고립을 낳는다는 인과관계가 확인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알토대학교 연구의 인터뷰 참여자 여러 명은 상사나 주변 사람과 나누기 어려운 대화를 AI로 연습한 뒤 실제 대화로 옮겼다.

AI 대화가 완충 장치인지 인간관계의 대체재인지는 대화 뒤의 행동에서 구분된다. 털어놓은 내용을 사람에게도 전했다면 AI는 말할 내용을 정리하는 리허설에 가깝다. AI에게만 말하고 다른 사람과 나눌 필요가 사라졌다면 대화는 AI에서 끝난다. 최근 AI에게 말한 사정 가운데 사람에게도 한 번은 전한 것이 있는가. AI와 대화한 뒤 사람에게 말하기가 쉬워졌는가, 더는 말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는가. 후자가 반복될수록 AI는 완충 장치보다 인간관계를 대신하는 대화 상대에 가까워진다. 사람에게 전할 이유는 그렇게 사라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