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어가 5분 만에 끝낸 보고서, 누구에게 청구할 것인가
AI를 자동화와 생산성 도구로만 보면 전략은 운영 개선에 그친다. 플랫폼 전략 연구자 상지트 폴 초더리는 이를 두고 “운영 탁월함이 전략적으로 파괴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클라이언트와 모델 업체가 리서치, 분석, 자료 제작을 나눠 맡기 시작한 상황에서 컨설팅 회사가 기존 업무의 소요 시간을 줄이는 데만 투자하면 지식 생산의 희소성이 사라지는 시장에서 입지가 좁아지는 중간 영역만 효율화하게 된다.
맥킨지의 생성형 AI 플랫폼 릴리는 2023년 7월 전사 도입 이후 직원 약 72%가 사용했으며 매달 50만 건이 넘는 요청을 처리했다. 지식을 검색하고 취합하는 시간은 최대 30% 줄었다. 과거 자료 검색과 슬라이드 초안 작성도 릴리가 맡는다.
주니어 인력이 수행하던 과금 대상 업무가 몇 분 만에 끝나면서 수익 모델도 영향을 받았다. 맥킨지 수수료의 약 25%는 성과와 연동되지만 나머지는 여전히 투입 시간과 업무량을 기준으로 책정된다.
BCG 컨설턴트 758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AI 사용자는 AI가 처리하기 적합한 18개 과제를 12.2% 더 많이 수행했고 완료 시간은 25.1% 짧았다. 결과물의 품질도 높았다. 반면 AI가 제대로 처리하기 어려운 과제에서는 정답률이 약 19% 낮아졌다. 리서치와 초안 작성에 들인 시간만 성과로 평가하면 표준화하기 쉬운 업무만 개선되고 판단과 통합은 성과 관리에서 빠진다.
누구나 만드는 시안, 당신에겐 무엇이 남았나
조직이 잘하는 일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게 되면 높은 값을 받기 어렵다. 전략은 더 강해진 능력보다 새로 생긴 제약에 맞춰야 한다. 생성형 AI가 등장하기 전에는 일정 수준 이상의 광고 시안을 여러 개 만들려면 숙련된 인력과 큰 비용이 필요했다. 이제 시안 개수를 혁신 지표로 삼는 에이전시는 희소성을 잃은 업무의 생산량만 늘리게 된다.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광고 메시지와 사업 성과의 관계를 반복해서 학습해야 한다. 고객 업무에 참여해 성과를 측정하고 어떤 선택이 결과에 영향을 미쳤는지 추적하는 방식이다. 2026년 시장조사기관 Forrester 조사에 따르면 미국 에이전시 10곳 중 9곳이 마케팅 실무에 생성형 AI를 사용했고 절반은 에이전틱 AI(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여러 단계 작업을 실행하는 AI)를 도입했다. 우선 목표로 직원 생산성을 꼽은 곳은 81%였으며 61%는 AI를 사업 비용으로 분류했다.
맥킨지는 기획, 구매, 보고, 제작을 담당하는 에이전시가 큰 압력을 받는 반면 조정과 통합 업무는 상대적으로 영향이 적다고 분석했다. 일부 업체는 고객사 정보에 맞춘 AI와 독점 데이터, 관리 체계, 검증된 성과에 연동한 가격 체계를 도입하고 있다. 식품기업 Kellanova와 모바일 광고 기업 VidMob, 마케팅 업계 단체 MMA Global은 과거 광고 성과를 바탕으로 제작 기준을 점수화해 3초 조회율을 83%의 정확도로 예측했다. 앞으로 경쟁력은 시안을 얼마나 많이 처리하고 제작비를 얼마나 줄였는지가 아니라 어떤 선택이 성과 지표에 영향을 미쳤는지 파악하는 능력에서 나온다.
모듈화된 시장.. 생존은 피드백 독점에 달렸다
외주와 표준 인터페이스, 클라우드가 확산되면서 기업은 업무를 모듈로 나누고 경쟁력 있는 분야에 집중했다. 이 전략은 인터페이스가 안정적일 때 효과를 낸다. 그러나 고객 반응에 맞춰 설계, 생산, 유통, 수요 예측을 함께 조정해야 하는 사업에서는 개별 업무의 역량보다 업무 간 피드백을 직접 관리하는 조직이 유리하다.
패스트패션 기업 Shein의 LATR(소량 생산으로 반응을 본 뒤 잘 팔리는 상품만 다시 찍는 방식)은 신제품을 100~200개만 생산해 시장 반응을 살핀 뒤 판매량이 많으면 추가 주문하는 방식이다. 공급사는 클라우드 소프트웨어로 연결하고 주문량은 전문성, 가격, 가동률에 따라 배분한다. 수요가 확인된 상품은 이르면 5일 안에 재입고한다. 유행 파악부터 디자인, 소량 생산, 판매 시험, 주문 배분, 재입고까지 한 체계 안에서 조정하기 때문에 생산 일부를 외주화해도 관련 데이터와 운영 경험은 Shein에 남는다.
지식노동에서도 최종 결과물만 보관해서는 충분하지 않다. 채택되지 않은 안과 실패한 실험, 판단 과정에는 특정 안을 선택한 이유와 대안이 실패한 원인, 판단이 바뀐 과정이 담겨 있다. 이를 기계가 읽을 수 있는 형태로 기록하면 검색과 재조합, 누락 확인, 업무 개선에 활용할 수 있다. 디자인과 공정의 조합, 추천이 효과를 낸 조건, 개입 전후의 결과를 측정한 조직은 다음 생산에서 무엇을 개선할지도 판단할 수 있다.
포워드 디플로이드 엔지니어(고객사에 직접 상주하며 제품을 그 환경에 맞춰 구축하는 엔지니어)는 고객의 데이터와 기존 시스템, 성과 지표에 맞춰 시스템을 구축하고 현장에서 얻은 지식을 제품 개발에 반영한다. 데이터 플랫폼 기업 Databricks도 고객 성과를 기준으로 현장에서 축적한 지식을 제품 개선에 활용한다고 설명한다. 권고안을 전달하고 끝나는 계약과 달리 성과 측정과 실행, 결과에 따른 재학습까지 직접 관리하는 구조다.
이기는 법보다 ‘게임의 존재’를 묻는 전략
AI는 기존 업무의 비용을 낮추는 데 그치지 않는다. 어떤 활동에서 가치가 생기는지, 누가 그 일을 맡는지, 산업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지도 달라진다. 초더리가 전략의 출발점을 ‘어떻게 이길까’에서 ‘그 게임이 아직 존재하는가’로 옮긴 이유다. 조직에는 별도의 AI 전략보다 AI 도입 이후의 환경에 맞는 사업 전략이 필요하다. 기존 강점을 뒷받침하던 조건이 달라졌다면 사업 영역과 경쟁 방식도 다시 정해야 한다.
컨설팅 회사가 릴리로 아낀 비용 30%를 자료를 더 많이 만드는 데 쓴다면 기존 결과물을 낮은 가격에 공급하는 수준에 머문다. 고객사의 성과를 측정하고 개입 결과를 다음 업무에 반영하며 실패 사례까지 검색할 수 있게 보관하면 수익 구조와 조직 운영 방식이 달라진다. 에이전시도 변종 하나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과 시간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메시지의 각 요소가 사업 성과에 미친 영향을 추적할 수 있다. 실패한 A/B 시험과 채택되지 않은 시안도 다음 업무에 활용할 자료가 된다.
투자안은 세 가지 기준으로 판단한다.
- 먼저 해당 활동의 희소성이 여전히 조직에 남아 있는지, 고객이나 AI 모델, 공개 도구로 넘어갔는지 확인한다.
- 다음으로 단일 업무만 개선하는지, 설계, 실행, 수요, 공급, 성과까지 함께 바꾸는지 살핀다.
- 마지막으로 완성된 결과물만 남기는지, 폐기된 안과 측정 기록까지 검색하고 다시 활용할 수 있는 자료로 보관하는지 따진다.
처리 속도는 이 세 조건을 충족한 뒤에야 전략적 의미를 갖는다.
출처
- Strategy in the age of AI - Eight points beyond the obvious — Platforms
- Interview Of The Week: Sangeet Paul Choudary — The Innovator
- McKinsey Staff Are Replacing an Essential Part of Work with AI — Entrepreneur
- McKinsey Ties 25% of Fees to Outcomes as AI Erodes Billable Hours — AI Weekly
- Navigating the Jagged Technological Frontier — Organization Science / HBS
- Forrester: Nine In 10 US Marketing Agencies Use AI To Cut Costs At The Expense Of Creativity
- The agentic advertising economy — McKinsey
- How Kellanova uses AI to predict creative performance and drive KPIs — Marketing Dive
- Shein HKEX listing document
- Forward Deployed Engineering: Delivering Business Outcomes with AI — Databrick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