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이냐 실무자냐, 아직도 이 질문에 갇혀 있는가
관리자 채용 12% 감소가 가리키는 본질
코른페리가 전 세계 1만 5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1%가 지난 1년 동안 자사에서 관리 층이 줄었다고 답했다. 채용공고에서 "manager"가 붙은 자리는 1년 전보다 12% 감소했고, "lead"와 "principal"이 붙은 자리는 18% 증가했다. 가트너는 2026년 말까지 기업의 20%가 AI를 활용해 중간관리자 수를 절반 이상 줄일 것으로 전망했다.
이 수치는 직급을 기준으로 조직 변화를 분석하는 방식이 실제로 일어나는 변화를 잘 포착하지 못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사라지는 것은 관리자라는 직책 자체가 아니라, 관리자가 수행하던 특정 기능이다. 직급표를 보는 대신, 어떤 기능이 유지되고 어떤 기능이 축소되거나 대체되는지를 보는 것이 변화의 실체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이다.
단순한 정보 전달자를 언제까지 관리자로 둘 것인가
100년 전에는 전화를 걸 때 교환원을 거쳐야 했다. 교환원이 수동으로 선을 연결해줬다. 자동교환기가 도입되면서 교환원이라는 직업은 사라졌다. 그러나 전화망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규모가 커졌다. 없어진 것은 통신 자체가 아니라, 사람이 직접 선을 꽂아 연결하던 라우팅 기능이었다.
중간관리자의 주요 기능도 이 라우팅에 가까웠다. 상부의 지시를 하부에 전달하고, 하부의 보고를 상부에 취합하며, 부서 간 일정을 조율하는 일이다. 정보가 중간관리자를 거쳐 흐르는 구조에서, 그는 조직 내 인간 라우터 역할을 했다. 그가 없으면 위아래 소통과 옆 부서와의 협업이 원활하게 이뤄지기 어려웠다.
에이전트가 대체하는 영역이 바로 이 라우팅이다. 업무 조율, 리포팅, 정보 전달과 같은 반복적인 연결 작업은 자율 에이전트가 사람보다 빠르고 지속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Shopify, Klarna, Duolingo 등에서 중간관리자 층이 줄어든 주요 지점도 여기에 있다. 조율과 보고 업무를 에이전트가 맡기 시작하면서, 해당 기능을 수행하던 자리가 줄어든 것이다.
Shopify CEO 토비 뤼트케는 2025년 4월 직원 메모에서 이 점을 지적했다. 그는 팀이 새로운 역할을 요청하기 전에, 그 역할이 이미 자율 에이전트로 구성된 팀으로 대체될 수 있는지를 먼저 확인하라고 밝혔다. 라우팅 기능을 에이전트가 수행할 수 있다면, 기존의 인간 라우터는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다.
사라지는 것은 관리 자체가 아니라 라우팅 레이어다. 그동안 관리와 라우팅을 동일시해온 것이 혼란을 키웠다. 라우팅이 자동화되면서 관리 기능 전체가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대체되는 것은 정보를 전달하고 조율하던 계층이다. 방향을 설정하고 판단하는 일은 에이전트가 대신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 일은 여전히 사람의 역할로 남아 있다.

통제 범위의 확장 vs 가치 범위의 확장
중간관리자 수가 줄어드는 동시에, 에이전트 매니저라는 새로운 역할이 부상하고 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2026년 2월 기사에서 AI 시대에 기업이 성장하려면 에이전트 매니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관리에 대한 수요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과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의미다.
남은 관리자 한 명이 맡는 직속 인원 수는 2013년 이후 거의 두 배로 증가해 평균 12명에 이르렀다. 포춘은 이를 메가매니저 시대라고 표현했다. AI가 관리자의 업무를 단순히 줄여준 것이 아니라, 관리자 수가 줄면서 남은 관리자 한 명이 담당하는 범위가 넓어진 결과다. 실무 실행은 에이전트에게 넘어가고, 판단과 결정은 더 적은 수의 사람에게 집중되는 구조다.
이 변화 속에서 축소되는 기능과 남는 기능이 구분된다. 축소되는 쪽은 행정적 관리 업무다. 프로세스 통제, 보고 수집, 일정 조율과 같은 작업이 여기에 해당한다. 반대로 남거나 강화되는 쪽은 방향 설정과 판단이다. 무엇을 문제로 정의할지, 어떤 기준으로 결과를 평가할지,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일이다. 가트너는 관리자의 통제 범위(span of control)를 넓히는 대신, 가치 창출 범위(span of value)를 확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구분에 따르면, 조직 내 실질적인 분기점은 직급이 아니라 역할의 성격에 있다. 정보를 전달하고 조율하는 역할(라우터)과 방향을 정하고 판단하는 역할(디렉터)로 나뉜다. 관리자 직함을 가지고 있어도 주로 라우팅을 수행했다면 에이전트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Individual Contributor 직함을 가지고 있어도 방향 설정과 기준 수립을 해왔다면, 에이전트 시대에 오히려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직급 자체는 이 구분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사람을 거느려야만 리더라는 착각을 버려라
방향을 설정하고 실행을 지시하는 일, 즉 디렉션은 전통적으로 관리자의 고유한 역할로 여겨졌다. 이 역할이 가진 힘은 직급 자체가 아니라 레버리지에 있었다. 직접 모든 일을 하지 않더라도 여러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다. 과거에는 이 레버리지를 확보하기 위해 사람을 배정받아야 했고, 사람을 배정받기 위해서는 조직 내에서 더 높은 위치로 올라가야 했다.
에이전트는 이 전제를 바꾸고 있다. 실무자는 헤드카운트나 결재, 조직 내 정치 없이도 에이전트에게 직접 방향을 줄 수 있게 됐다. 그 결과, Individual Contributor도 실행과 동시에 레버리지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과거에는 권한이 없으면 사람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 조직의 기본 구조였다. 에이전트가 도입되면서 이 구조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Shopify는 새로운 인력을 요청하기 전에 해당 업무를 에이전트로 처리할 수 있는지를 먼저 검토하라는 방침을 세웠다. 이는 에이전트를 활용한 1인 실행 단위를 기본 단위로 삼겠다는 접근이다. 이후 Box, Fiverr 등에서도 유사한 '에이전트 우선' 원칙을 내부적으로 적용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표현은 다르지만 핵심은 동일하다. 인력을 늘리기 전에 에이전트로 대체 가능한지를 먼저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과거에 레버리지는 직급과 거의 결합되어 있었다. 에이전트의 등장으로 레버리지가 직급에서 분리되는 양상이 관찰되고 있다. 관리자 직함이 반드시 레버리지를 보장하지 않게 된 것이다.

정보를 전달하는 라우터 vs 방향을 결정하는 디렉터
에이전트가 대체하기 어려운 영역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무엇을 문제로 정의할지 결정하는 일, 결과의 질을 판단하는 기준을 세우는 일,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방향을 설정하는 일이다. 이 세 가지는 직급이나 보고 체계에서 자동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직접 실행을 경험한 사람에게서 더 뚜렷하게 나타나는 감각이다. AI 전략을 문서와 수치로만 다뤄본 사람과, 실제로 에이전트를 운영하며 어디서 실패하고 어디서 병목이 생기는지를 직접 겪은 사람은 이 부분에서 차이를 보인다.
조직 내에는 이 감각의 차이에서 오는 간극이 존재한다. 임원층은 AI를 주로 ROI나 경쟁우위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반면, 현장에서는 도구의 파편화, 데이터 품질 문제, 시스템 간 통합 마찰 등을 직접 마주하며 어려움을 겪는다. 이 간극을 메우는 데 유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은 비전을 선언하는 임원도, 기존의 보고와 조율을 담당하던 중간관리자도 아니다. 에이전트를 직접 다루며 그 한계와 가능성을 몸으로 경험한 사람이다.
이 경험의 유무는 직급과 무관하게 영향을 미친다. 에이전트를 실제로 운영해본 경험이 임원에게 있으면 해당 임원의 판단력이 강화되고, Individual Contributor에게 있으면 해당 Individual Contributor의 영향력이 커진다. 실질적인 차이는 직함이 아니라, 에이전트를 통해 방향을 설정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
라우팅 기능이 자동화되면서,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과 방향을 정하는 역할이 더 명확하게 구분되고 있다. 과거에는 이 두 역할이 관리자 계층에 함께 묶여 있었지만, 에이전트의 도입으로 실행과 지휘를 분리해서 수행할 수 있는 구조가 생겨나고 있다. 이 변화는 직급과 상관없이, 에이전트에게 방향을 줄 수 있는 사람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임원이냐 Individual Contributor냐는 핵심적인 구분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라우팅에 머무는지, 디렉션을 수행할 수 있는지다.

에이전트가 라우팅 기능을 상당 부분 맡게 되면서, 조직에서 중요한 것은 직급이 아니라 에이전트에게 방향을 설정하고 결과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 능력은 직함에서 자동으로 주어지지 않으며, 실제로 에이전트를 운영해본 경험을 통해 쌓인다. 결국 조직 안에서 어떤 위치에 있든, 자신이 주로 정보를 나르는 역할에 머무는지, 아니면 방향을 정하는 역할로 이동하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 현재의 변화를 이해하는 데 더 유용한 기준이 될 수 있다.